* 도서관 소식지에 실린 안철수 교수님의 <청소년을 위한 독서칼럼> '바람직한 독서방법'이 좋아서 전체를 옮겨적습니다. (은평구립도서관 소식, 2009년 12월 제 31호)
독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일 수 있다. 책 한 권을 쓰려면 저자는 엄청나게 많은 노력과 공부를 한다. 읽는 시간보다 쓰는 시간은 수십 배 더 많이 걸릴 만큼 저자의 풍부한 지혜가 담겨 있다. 독자들은 그 일련의 과정을 단번에 줄일 수 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저자의 경험과 지식을 볼 수 있다. 이게 인생을 압축해서 볼 수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것 아닌가. 또 책을 읽는 이유는 세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넓고 빨리 돌아가고 있는지, 또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를 알게 해 주는 것 같다.
그런데 좋은 책이라고 할지라도 무턱대로 읽는 것보다는, 각자 나름대로 책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와 습관에 대해서 한번쯤은 고민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바람직한 독서방법에 대한 생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람들이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이미 알고 있고 경험한 정도에 비례한다. 그래서 두 사람이 같은 책을 읽더라도 그들이 책을 통해서얻는 지식의 양이나 깨달음에는 많은 차이가 나기도 하며, 심지어는 서로 반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극단적인 예로 같은 책을 초등학생과 대학교수가 읽었을 때 이해하는 정도와 받아들이는 폭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 사람이 같은 책을 읽는다 할지라도 몇 년 전에 읽었을 때와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었을 때의 느낌이나 얻는 지식이 다를 수 있다. 또한 과거에는 못 느꼈던 새 감정을 느끼거나 새로운 이해와 지식을 얻는 경우도 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책을 읽을 때는 자연히 그동안 자신이 살아오면서 고민하고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즉, 그 사람의 지식, 경험의 크기에 따라서, 그리고 현실에서 얼마나 고민하고 열심히 살아왔느야에 따라서 이해의 정도와 폭이 다른 것이다. 이것이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라는 말의 진정한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떤 책을 한 번 읽었다고 해서 그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며, 다른 사람이 같은 책을 읽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지식이 나와 같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둘째, 유익한 책 읽기의 또 하나의 열쇠는 사색이다. 독서에 있어서 글을 읽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사색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어서 '해치운다'는 마음가짐보다는 책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느냐에 중점을 두어야 하며, 여러 권의 책을 체하듯이 무턱대로 읽는 것 보다는 좋은 책 한 권을 천천히 생각해가면서 읽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책 내용을 자신의 경험이나 현재상황에 대입해 생각해보고, 다른 책과도 비교해 보거나 연관지어 보는 등,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서 책에 나온 내용도 내재화하고 사고의 폭도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세째, 유익한 책읽기를 위해 유의해야 할 또 한가지는 편식하지 않는 것이다. 몇 권의 좋은 책만 집중해서 보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편협한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을 담아놓은 그릇이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과 현상들은 여러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나 저자가 여러 측면을 모두 다루기는 힘들 뿐 아니라, 저자가 신이 아닌 이상 틀릴 수도 있다. 따라서 책 내용을 무조건 믿고 그와 다른 의견은 무조건 틀리다고 단정하기 보다는 융통성 있고 열린 사고로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네째, 책을 읽을 때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만 받아들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거나 설렁설렁 읽고 넘어가서 곧 잊어버리는 잘못을 범하기 쉽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 대한 변명거리 또는 방어논리를 만드는데 열중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라면 차라리 책을 읽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책을 읽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깨우치고,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며, 보다 발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경우만이 책을 읽는 진정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책은 우리가 현실에서 필요로 하는 직접적인 답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 여러 이해 관계자, 그리고 역사가 혼합된 부산물이기 때문에 책에 나온 경우가 그대로 재현되는 경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에 나오는 다른 기업의 성공사례를 그대로 따라하더라도 성공하기 힘든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책은 우리가 생각하고 고민할 재료를 만들어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들을 짚어주며, 여러 가지 시각에서 본 다양한 견해를 제공해주어서 사물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준다. 따라서 책은 해답을 제시해주는 우리의 지도자나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옆에서 여러 가지 견해를 들려주는 충실한 조언자이자 동반자처럼 생각하는 것이 적절하다.
여섯째, 책은 읽기만 하는 것으로 그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 나의 굳은 믿음이다. 책은 사고방식의 변화를 가져오거나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줌으로써 궁극적으로 마음가짐의 변화, 생활 습관의 변화,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현실에 반영하지 못하는 지식은 쓸모없는 것이다"라는 말에 공감한다. 생각만 하고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나 모래 위의 누각과 다를 바가 없다.
마지막으로 교육과 마찬가지로 책이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어떤 경우에는 몇 년 후에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책을 읽은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책을 읽으면서 충분히 사색하고, 책을 읽은 후에 깨닫게 된 그 시각을 적용하고자 노력했다면, 언젠가는 내재화한 지식과 에너지가 빛을 발할 것이라고 믿는다.